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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11월 19일 을묘 2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태종이 명나라 황제의 우대를 받고 돌아오다

태종명나라 서울에서 돌아왔다. 남재조반도 같이 왔다. 태종명나라 서울에 이르니, 황제가 두세 번 인견하였는데, 태종이 소상하게 〈사신 통행에 대하여〉 주문(奏聞)하니, 황제가 우대하고 돌려 보냈다. 처음에 태종이 떠날 때 찬성사 성석린(成石璘)이 시를 지어 태종을 전송하였다.

"자식을 알고 신하를 아는 예감(睿鑑)이 밝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성의(誠意)는 백성을 살리기 위함이라. 모두 말하기를 만세의 조선 경사는, 이 더위와 장마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가는 데 있다 하더라."

명나라 선비들이 태종을 보고 모두 조선 세자라 하면서 대단히 존경하였으며, 태종연부(燕府)를 지날 때는 연왕(燕王) 【즉 성조 황제.】 이 친히 대해 보았는데, 곁에 시위하는 군사가 없고 다만 한 사람이 모시고 서 있었다. 온순한 말과 예절로 후하게 대접하고, 모시고 선 사람을 시켜서 술과 음식을 내오게 하였는데, 극히 풍성하고 깨끗하였다. 태종연부를 떠나서 도중에 있을 때, 연왕서울 〈금릉〉에 조회하기 위하여 편안한 연(轝)을 타고 말을 몰아서 빨리 달려갔다. 태종이 말 위에서 내려 길가에서 인사하니, 연왕이 수레를 멈추고 재빨리 연의 휘장을 열고서 오래도록 온순한 말로 서로 이야기하다가 지나갔다. 뒤에 태종이 흠차 내관(欽差內官) 황엄(黃儼)을 보고 물었다.

"옛날 태종 황제연부에서 볼 때에 모시고 섰던 사람이 누구냐?"

이 대답하였다.

"경 대인(慶大人)인데, 온순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황제가 제일 신임하던 사람이나, 지금은 죽고 없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71면
  • 【분류】
    외교-명(明)

○我殿下回自京師, 南在趙胖隨至。 殿下至京, 帝引見再三, 殿下敷奏詳明, 帝優禮遣還。 初殿下之行也, 贊成事成石璘, 作詩以送殿下曰: "知子知臣睿鑑明, 畏天誠意爲生成。 皆言萬世朝鮮慶, 在此炎霖跋涉行。" 上國士人見殿下, 皆稱朝鮮世子, 甚敬之。 殿下過燕府, 燕王 【卽太宗皇帝。】 親見之, 旁無衛士, 唯一人侍立。 溫言禮接甚厚, 因使侍立者饋酒食, 極豐潔。 殿下離在道上, 燕王乘安轝朝京師, 驅馬疾行, 殿下下馬見於路側, 燕王停駕, 亟手開轝帷, 溫言良久乃過行。 後殿下見欽差內官黃儼, 問: "昔見帝于府之日, 侍立者爲誰?" 曰: "大人, 溫良人也。 帝最親信者, 今已亡矣。"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71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