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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2월 26일 병신 2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삼성에서 왕씨 일족을 귀양보내도록 연명 상소하니 공주 등지로 유배시키다

대간과 형조에서 장소(章疏)를 같이하여 상언(上言)하였다.

"어제 왕씨(王氏)를 제거하자는 한 가지 일로써 장소(章疏)에 연명(連名)하여 올려 청하였으나, 즉시 윤허를 얻지 못하고, 여러 번 전하의 귀를 번거롭게 했사오니 낭패됨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지극히 공평하고 사심이 없는 것은 하늘이고, 지극히 어리석어도 신지(神智)한 것은 백성이니, 천도(天道)는 왕씨(王氏)에게 화(禍)를 주고 전하에게 복을 준 것이 아니라, 곧 무도(無道)한 자에게 화(禍)를 주고 유도(有道)한 사람에게 복(福)을 준 것이며, 민심(民心)은 왕씨를 미워하고 전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곧 무도한 자를 미워하고 유도한 사람을 사랑한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천명(天命)을 개혁하여 나라를 세웠으니, 진실로 마땅히 하늘의 명령을 듣고 사람의 마음을 따라야 될 것이온데, 대간(臺諫)과 법관(法官)이 〈왕씨의 제거를〉 두세 번이나 청하였는데도 전하께서 장소(章疏)를 머물러 두고 내려보내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대저 큰 과오를 석방하는 것은 《춘추(春秋)》에서 경계한 바이며, 사람을 능히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람을 능히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은 선유(先儒)의 격언입니다.

지금 공양(恭讓)은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이미 끊어졌으므로 스스로 감내하지 못함을 알고서 물러가 밖에서 살고 있으며, 처자(妻子)가 한 곳에서 모여 살고 조석(朝夕)의 접대가 그전과 같으니, 이것은 전하의 하늘과 같은 덕이옵니다. 이를 은덕으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반역을 도모하여 자신이 흔단(釁端)을 일으켰으니, 이것은 곧 하늘이 죄 있는 자를 토벌하는 것으로서 변경할 수 없는 정리(定理)입니다. 악(惡)을 제거하면서도 그 근본을 힘쓰지 않는다면 간웅(奸雄)과 호협(豪俠)들의 잠복(潛伏)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저들 박중질(朴仲質)김가행(金可行)이 점친 것은 공양군(恭讓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왕씨들이 혹은 서울에서, 혹은 기전(畿甸)에서 거리낌 없이 행동하면서 절도(節度)가 없는 사람은 매우 염려스러운데, 하물며 왕강왕격은 지모와 계략이 남보다 뛰어나고, 왕승보왕승귀는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남보다 뛰어났으니, 모두 능히 재주를 믿고 화란(禍亂)을 일으킬 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마음속에 불측(不測)한 생각을 품고 그 틈을 엿보고 있는 사람은 일찍이 하루라도 마음속에서 잊지 않았는데, 다만 기회가 불행하였을 뿐인 것입니다. 더구나, 광무제(光武帝)는 유씨(劉氏)에게 남양(南陽)의 서얼(庶孽)이고, 선주(先主)025)중산왕(中山王)에게 족속(族屬)이 소원(疏遠)하였는데도, 팔을 뽑아내어 한번 부르짖으며 천하 사람이 행동을 같이 취했사오니, 이것은 밝은 전감(前鑑)이라 이를 수 있습니다.

전조(前朝)의 태조(太祖)가 후손(後孫)에게 훈계를 전하면서 백제(百濟) 사람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지난번에 후손들이 그 훈계를 준수했더라면 〈전주 사람인〉 전하께서 또한 어찌 오늘날이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이 감히 말씀 드리는 까닭입니다. 옛날의 인주(人主)가 어물어물하고 속히 결단하지 못하여 화란(禍亂)을 초래한 것은 전하께서 일찍이 들으신 바입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천도(天道)의 일정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시고 민심(民心)을 보존(保存)하기 어려운 것을 염려하시어 대의(大義)로써 결단하여, 즉시 대간(臺諫)과 법관(法官)으로 하여금 공양(恭讓)의 삼부자(三父子)를 법에 처하고, 그 왕강·왕격·왕승보·왕승귀와 그 동성(同姓)의 아우와 조카까지 모두 해도(海島)로 내쫓고, 강화(江華)부처(付處)026)왕씨도 또한 해도로 귀양보내어 중외(中外)의 근심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근절하게 하소서."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니, 대간과 형조에서 모두 정사(政事)를 보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왕강(王康) 등을 불러,

"경들은 국가에 공로가 있으므로 폄적(貶謫)하는 예(例)에 처하지 아니했는데, 지금 대간(臺諫)이 소(疏)를 올려 논핵(論劾)했으나 내가 따르지 아니하니, 대간이 모두 정사를 보지 않으므로 내가 마지못하여 따르게 된다. 경들은 각기 폄소(貶所)로 돌아가라. 나도 또한 경들의 공로를 잊지 않겠다."

하면서 술을 내려 주었다. 이에 왕강공주(公州)로, 왕격안변(安邊)으로, 왕승보영흥(永興)으로, 왕승귀합포(合浦)로 귀양보내니, 대간(臺諫)과 형조에서 그제야 정사를 보았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7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변란(變亂)

  • [註 025]
    선주(先主) : 유비(劉備).
  • [註 026]
    부처(付處) : 어느 곳을 지명하여 머물러 있게 하는 형벌의 하나.

○臺諫刑曹同章上言:

昨以去王氏一事, 連章上請, 卽未蒙允, 屢瀆聰聞, 不勝隕越。 竊惟至公無私者, 天也; 至愚而神者, 民也。 天道非禍王氏而福殿下, 乃禍無道而福有道也; 民心非惡王氏而愛殿下, 乃惡無道而愛有道也。 殿下應天順人, 革命開國, 誠宜聽於天而順於人也。 臺諫法官請至再三, 而殿下留章未下者, 獨何歟? 夫肆大眚, 《春秋》之戒也; 能愛人能惡人, 先儒之格言也。 今恭讓, 天命人心已絶, 自知不克, 退處于外, 妻孥之完聚, 朝夕之供億自若。 此則殿下昊天之德也。 不以是爲德, 反謀不軌, 自生釁端, 斯乃天討不易之定理也。 除惡而不務其本, 則奸雄豪俠, 其伏也無窮。 彼仲質可行之卜, 以有恭讓君也。 其他王氏, 或於京師, 或於畿甸, 橫行無節者, 甚可慮也。 而況王康王鬲謀略過人, 承寶承貴驍勇出衆, 皆能挾才以倡禍亂者也。 其內懷不測, 以伺其隙者, 未嘗一日忘于懷, 特機不幸耳。 且光武之於劉氏, 南陽庶孽耳; 先主之於中山, 族屬踈遠矣。 奮臂一呼, 而天下響應, 此可謂明鑑矣。 前朝太祖垂戒後昆, 勿用百濟人。 向使後昆, 遵守其訓, 殿下亦安能有今日也! 此臣等所以敢言者也。 古之人主, 優游不斷, 以致禍亂者, 殿下之所嘗聞也。 願殿下念天道之靡常, 慮民心之難保, 斷以大義, 卽令臺諫法官, 就將恭讓三父子, 置之於法; 其王康王鬲承寶承貴幷其同姓弟姪, 屛諸海島; 其江華付處王氏, 亦竄海島, 以絶中外虞疑之心。

上不允。 臺諫刑曹皆不視事。 上召等曰: "卿等有功於國家, 不置貶例。 今臺諫上疏論之, 而予不從, 臺諫皆不視事, 不得已而從之。 卿等各歸貶所。 予亦不忘卿等之功", 賜之酒。 乃流公州, 安邊, 承寶永興, 承貴合浦, 臺諫、刑曹乃視事。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7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