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원 학사 이직을 시켜 예전대로 조공하기를 청하는 표문을 보내다
중추원 학사(中樞院學士) 이직(李稷)을 보내어 중국 서울에 가서 사은(謝恩)하고 이내 그전대로 조빙(朝聘)하기를 청하게 하였다. 그 표문(表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남재(南在)가 경사(京師)에서 돌아와 삼가 선유(宣諭)가 간절하고 지극하심을 받고는, 신(臣)은 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감격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성훈(聖訓)이 곡진하게 타일러 포용(包容)하는 도량을 보이셨는데, 신의 마음은 성실하고 전일하오나 감괴(感愧)의 사정(私情)을 품게 되었습니다. 신은 그해 6월에 배신(陪臣) 김입견(金立堅)을 보내어 말 값[馬價]을 내려 주심을 사례하였고, 7월에 또 배신(陪臣) 윤사덕(尹師德)을 보내어 성절(聖節)을 하례하였는데, 모두 요동 도사(遼東都司)가 성지(聖旨)가 있다고 일컬으면서 막았으므로 돌아왔습니다. 삼가 배신(陪臣) 이지(李至)를 보내어 사정의 이유[情由]를 상세히 갖추어서 즉시 주문(奏文)하오니, 제 몸을 돌아보매 어찌 할 바를 모르므로, 예감(睿鑑)이 밝히 아시기를 바랐습니다. 지금 배신(陪臣) 남재(南在)가 선유(宣諭)하는 성지(聖旨)를 전해 받들고 왔사온데, ‘그대가 돌아가거든 그대 나라에 대하여 3년 만에 한 번 조공(朝貢)하도록 하고, 그대의 지성을 보아서 내가 사람을 시켜 그대를 불러 오게 한다.’ 하여, 사신 행차의 왕래하는 길을 통하게 하셨으니, 성인(聖人)의 회수(懷綏)하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개 황제 폐하께서 인애(仁愛)로써 소민(小民)을 사랑하고, 총명으로써 미세(微細)한 것을 밝게 살피시와, 신의 낮은 정성을 살펴서 신으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다만 세시(歲時)에 드물게 가는 것은 신의 마음에 예의(禮儀)를 다하지 못함이 있사오니, 원하옵건대, 수공(修貢)은 평상시와 같이 하여 천자(天子)의 수명이 영원하기를 빌게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1면
- 【분류】외교-명(明)
○癸亥/遣中樞院學士李稷, 赴京謝恩, 仍請依舊朝聘。 表曰:
陪臣南在, 回自京師, 欽蒙宣諭切至, 臣與國人, 不勝感激者。 聖訓諄諄, 廓示包容之量, 臣心斷斷, 玆懷感愧之私。 臣於當年六月間, 遣陪臣金立堅, 謝賜馬價, 七月, 又遣陪臣尹師德, 進賀聖節, 俱蒙遼東都司稱有聖旨, 阻當回還。 欽此, 遣陪臣李至, 備具情由, 卽行聞奏。 撫微躬而罔措, 冀睿鑑之灼知。 今者, 陪臣南在傳奉宣諭聖旨節該: "爾回去對他說三年一貢。 看爾至誠, 我使人叫爾來。" 欽此, 許通行李往來之途, 深荷聖人懷綏之惠。 玆蓋伏遇皇帝陛下, 仁以字小, 明以燭微, 察臣卑忱, 俾臣再造。 但歲時之疎也, 在臣心而缺焉, 願修貢之如常, 供祈天之有永。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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