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6월 24일 무술 2번째기사
1393년 명 홍무(洪武) 26년
판삼사사 윤호의 졸기. 참지문하부사 김입견을 윤호 대신 성절사로 보내다
하성절사(賀聖節使)인 판삼사사(判三司事) 윤호(尹虎)가 금암역(金巖驛)에서 졸(卒)하였다. 부고(訃告)가 들리니 임금이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게 하였다. 윤호의 자는 중문(仲文)이니 파평군(坡平君) 윤해(尹侅)의 아들이다. 천성이 정직하고 글씨를 조금 잘 썼다. 일찍이 공민왕대에 벼슬하였는데, 공민왕이 그와 더불어 바둑을 두니, 윤호는 이기지 아니하였다. 명하여 옛날의 시(詩)를 써서 바치게 하니, 곧 당(唐)나라 이신(李紳)의 독이사전시(讀李斯傳詩)를 써서 바쳤다. 그 시는 이러하였다.
"어두운 곳을 속이는 일도 그렇지 못할 것인데,
밝은 곳을 속이는 일은 마땅히 제손으로 죽어야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손으로서는
천하의 눈을 가리기가 어렵겠구나."
공민왕이 넌지시 간(諫)한다고 여겨 마침내 그를 소원(疏遠)하여 양광도 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로 삼았다. 군사를 꾀로써 잘 부려 여러 번 왜구(倭寇)를 잡았으며, 계림 부윤(鷄林府尹)이 되어 적을 잘 방어하였다. 혁명(革命)할 초기에 협찬(協贊) 추대(推戴)한 공로가 있었는데, 명령을 받아 중국 서울에 조회하게 되매, 병(病)으로 사양하지 아니하고 병을 참고서 가다가 길에서 죽었다. 아들이 없다.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김입견(金立堅)으로 윤호를 대신하여 가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5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