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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2월 22일 무진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고신 서경에 대한 사간원의 상소문

간관(諫官)이 상소(上疏)하였다.

"신 등은 듣건대, 정치하는 요령(要領)은 인재(人材)보다 먼저 할 것이 없는데도, 인물의 현우(賢愚)를 식별하여 사람을 임관(任官)하는 일은 성현도 어렵게 여긴 바입니다. 비록 당·우(唐虞)의 성세(盛世)일지라도 오히려 공공(共工)환도(驩兜)227) 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하물며 한(漢)나라·위(魏)나라 이후로는 내외(內外)의 관직이 천백(千百)으로써 헤아릴 수 있었으니, 군주가 어찌 능히 혼자서 살펴 출척(黜陟)하였겠습니까? 이로써 관리의 성적을 상고하는 법[考績法]을 제정하여 그 허실을 조사하고 그 우열(優劣)을 등급 매겨, 진실로 명칭에 따라 실상을 책임지우게 하였으니, 곧 사람을 임용하는 선무(先務)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동방의 선거(選擧)하는 방법은 간략하여 구비되지 못하고, 출신(出身)하는 길은 난잡하여 다단(多端)한데, 또 하물며 오로지 시일(時日)의 경과만으로써 관자(官資)에 따라 서용(敍用)을 구하여, 현명한 사람과 우매한 사람이 서로 섞여짐을 면하지 못하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따라서 순서가 없게 되었으니, 이것이 논박(論駁)하여 바로잡는 법을 만든 이유이며, 백관의 고신(告身)228) 은 반드시 대간(臺諫)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고신이 대간(臺諫)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벼슬에 종사(從事)하여 명기(名器)229) 를 더럽히지 못하게 하니, 혹시 두려워하여 반성하면서 행실을 고치게 하는 이익이 있다면, 그것이 명기(名器)를 소중히 여기고 풍속을 면려(勉勵)하는 데 있어 어찌 도움이 적겠습니까? 비록 혹시 간사한 무리들이 부당히 대간(臺諫)에 외람되이 있으면서, 사소한 원한을 보복하고자 하여 둔사(遁辭)230) 를 만들어 내어 시일을 지체하면서 서경(署經)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어찌 그런 사람의 나쁜 짓으로 인하여 그 법까지 아울러 버리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옛날의 고칙(誥勅)231) 의 제도에 의거하여 전일의 잡서(雜署)232) 고신(告身)하는 법을 대체(代替)시켰는데, 신 등이 가만히 일찍이 당(唐)나라 제도의 고칙(誥勅)의 법을 상고해 보건대, 사람을 임용하는 즈음에 만약 적당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학사(學士)가 제서(制書)를 초잡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였고, 제서가 비록 내려졌더라도 간관(諫官)이 봉하여 돌려보낸 예(例)가 있었으니, 그렇게 된 이유는 진실로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요행으로써 진용(進用)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 대간(臺諫)에서 서경(署經)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감히 전하의 교명(敎命)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곧 임금의 직무에 결점이 있는 것을 보좌하자는 까닭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직책에 맞지 않는 사람은 그 실수를 면대해서 나무라라고 명하였지만, 그것이 군주가 명철하고 신하가 현량하여, 신하가 임금에게 말할 수 있는 길이 크게 트인 시기에는 혹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뒷세상에 기강이 점점 해이해져서 간신(姦臣)과 권신(權臣)이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는 시기에 이르러서는, 비록 위징(魏徵)233) 과 같은 충신과 양성(陽城)234) 과 같은 직신(直臣)이 있더라도 어찌 능히 죽음을 무릅쓰고 힘써 간(諫)하여 그 실수를 고치게 하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고신(告身)의 잡서(雜署)를 그전 규정을 폐지하지 말게 하고서, 간사한 무리들로 하여금 대간(臺諫)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한다면, 명기(名器)가 더렵혀지지 않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처소가 있게 되고, 현명한 사람과 우매한 사람이 각기 그 소용을 얻게 되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각기 그 분수를 편안하게 여겨, 뒷세상에서 항상 잊지 않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임금이 이를 보고 말하였다.

"그 고려 왕조의 고신(告身)을 서경(署經)하는 법에 있어서 불편한 것이 있었으므로 이로써 이를 고치게 한 것이니, 마땅히 지금부터는 4품 이상의 관원은 교명(敎命)을 내리고, 5품 이하의 관원은 문하부(門下府)에서 직첩(職牒)을 주게 하되, 만약 직책에 맞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뒤따라 즉시 논핵(論劾)하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정론(政論)

  • [註 227]
    공공(共工)과 환도(驩兜) : 순제(舜帝) 때의 사흉(四凶) 중의 한 사람임. 사흉(四凶)은 공공(共工)·환도(驩兜)·삼묘(三苗)·곤(鯀)을 일컬음.
  • [註 228]
    고신(告身) : 직첩(職牒).
  • [註 229]
    명기(名器) : 작위(爵位)와 거복(車服)을 이름이니,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분별하는 것임.
  • [註 230]
    둔사(遁辭) : 빠져 나가려고 꾸며대는 말.
  • [註 231]
    고칙(誥勅) : 당나라 때 관리를 임명하는 조칙.
  • [註 232]
    잡서(雜署) : 1품에서 9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경(署經)하는 일.
  • [註 233]
    위징(魏徵) : 당 태종(唐太宗) 때의 간신(諫臣).
  • [註 234]
    양성(陽城) : 당 덕종(唐德宗) 때의 간신(諫臣).

○戊辰/諫官上疏曰:

臣等聞爲治之要, 莫先於人材, 而知人官人, 聖賢所難也。 雖以之盛世, 猶有共工驩兜之輩, 而況以降, 內外之官, 以千百數, 人君豈能獨察而黜陟哉? 是以立考績之法, 覈其虛實, 第其優劣, 誠以循名責實, 乃爲用人之先務也。 吾東方選擧之法, 略而未備, 出身之路, 雜而多端。 又況專以日月, 循資求敍, 賢愚不免混淆, 貴賤從而冒濫! 此駁正之法所由作, 而百官告身, 必經臺諫, 其有告身, 未經臺諫者, 不得從仕, 以累名器。 或者惕然修省, 而有改行之益, 其於重名器礪風俗, 豈小補哉! 雖或有回詐之輩, 濫居臺諫, 欲報睚眦, 構爲遁辭, 淹延不署者矣, 豈可因其人之不類, 倂去其法乎? 恭惟殿下依古者誥勑之制, 以代前日雜署告身之法。 臣等竊嘗考制誥勑之法, 用人之際, 如有不當者, 學士不肯草制, 制雖下, 諫官有封還之例。 所以然者, 誠使不才者不得以倖進也。 今臺諫所以不署者, 非敢廢閣殿下之敎命也, 乃所以補袞職之有闕也。 殿下敎以不稱職者, 面諍其失, 其在主明臣良, 言路大開之日, 容有然者, 至若後世紀綱陵夷, 姦權用事之時, 雖有魏徵之忠、陽城之直, 豈能冒死而力爭, 以救其失乎? 伏願殿下, 許令告身雜署, 無替前規, 而毋使回詐之徒, 接跡臺諫, 則名器不褻, 勸懲有所, 賢愚各得其用, 貴賤各安其分, 後世有所持循矣。

上覽之曰: "其在前朝告身經署之法, 有未便者, 是以革之。 宜自今四品已上, 賜敎命, 五品已下, 令門下府給牒, 如有不稱職者, 隨卽論劾。"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책 3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인사-관리(管理)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