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2월 13일 기미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조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왕우 아들의 성을 외가를 따라 노씨로 하게 하다
조준(趙浚)을 문하 좌시중(門下左侍中)으로 삼고, 김사형(金士衡)을 문하 우시중(門下右侍中) 상락백(上洛伯)으로 삼고, 식읍(食邑)은 1천 호(戶), 식실봉(食實封)은 3백 호로 하고, 권중화(權仲和)를 예문춘추관 대학사(藝文春秋館大學士)로 삼고, 정도전(鄭道傳)과 최영지(崔永沚)를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로 삼고, 우인열(禹仁烈)과 유만수(柳蔓殊)를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로 삼고, 정희계(鄭熙啓)를 판팔위사(判八衛事)로 삼고, 조임(趙琳)을 중추원 사(中樞院使)로 삼았다. 이보다 먼저 다만 문하부(門下府)·삼사(三司)·중추원(中樞院) 정원(正員)의 2품 이상만이 도평의사사의 직책을 겸무하였는데, 이날에 비로소 문하부(門下府)와 중추원(中樞院)의 상의(商議)와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의 대학사(大學士)·학사(學士)와 개성부(開城府)의 판사(判事)·윤(尹)까지 모두 도평의사사의 직책을 겸무하게 하였다. 노조(盧珇)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노관(盧琯)을 대장군으로 삼았다. 〈이 사람들은〉 왕우(王瑀)의 두 아들인데 외가(外家)의 성을 따르게 하였다. 노조는 고려 왕조의 정강군(定康君)이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6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