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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1월 29일 병오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국호를 화령과 조선으로 정하여 황제의 재가를 청하는 주문

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중국 남경에 가서 조선(朝鮮)화령(和寧)으로써 국호(國號)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 주문(奏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조임(趙琳)중국 서울로부터 돌아와서 삼가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왔는데, 그 자문에, ‘삼가 황제의 칙지를 받들었는데 그 내용에, 이번 고려에서 과연 능히 천도(天道)에 순응하고 인심에 합하여, 동이(東夷)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변방의 흔단(釁端)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사절(使節)이 왕래하게 될 것이니, 실로 그 나라의 복이다. 문서가 도착하는 날에 나라는 어떤 칭호를 고칠 것인가를 빨리 달려와서 보고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가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소방(小邦)은 왕씨(王氏)의 후손인 요(瑤)가 혼미(昏迷)하여 도리에 어긋나서 스스로 멸망하는 데 이르게 되니, 온 나라의 신민들이 신을 추대하여 임시로 국사를 보게 하였으므로 놀라고 두려워서 몸둘 곳이 없었습니다. 요사이 황제께서 신에게 권지 국사(權知國事)를 허가하시고 이내 국호(國號)를 묻게 되시니, 신은 나라 사람과 함께 감격하여 기쁨이 더욱 간절합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나라를 차지하고 국호(國號)를 세우는 것은 진실로 소신(小臣)이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조선(朝鮮)화령(和寧) 등의 칭호로써 천총(天聰)에 주달(奏達)하오니, 삼가 황제께서 재가(裁可)해 주심을 바라옵니다."

처음에 임금이 사신을 보내고자 했으나 그 적임자를 어렵게 여겼는데, 상질(尙質)이 자청하여 아뢰었었다.

"신(臣)이 비록 외국에 사신 가서 응대할 만한 재간은 부족하지마는, 감히 성상의 명령을 받들어 조그만 충성을 나타내지 않겠습니까?"

임금이 기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6면
  • 【분류】
    외교-명(明)

○丙午/遣藝文館學士韓尙質如京師, 以朝鮮和寧, 請更國號。 奏曰: "陪臣趙琳回自京師, 欽齎到禮部咨。 欽奉聖旨節該: ‘高麗果能順天道合人心, 以(妥)〔綏〕 東夷之民, 不生邊釁, 則使命往來, 實彼國之福也。 文書到日, 國更何號, 星馳來報。’ 欽此切念小邦王氏之裔, 昏迷不道, 自底於亡, 一國臣民, 推戴臣權監國事。 驚惶戰栗, 措躬無地間, 欽蒙聖慈許臣權知國事, 仍問國號, 臣與國人感喜尤切。 臣竊思惟, 有國立號, 誠非小臣所敢擅便。 謹將朝鮮和寧等號, 聞達天聰, 伏望取自聖裁。"

初上欲遣使, 難其人, 尙質自請曰: "臣雖乏專對之才, 敢不敬承上命, 以効寸忠!" 上說。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6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