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세의 경감과,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공부 상정 도감의 상서문
공부 상정 도감(貢賦詳定都監)159) 에서 상서(上書)하였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殿下)께서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문득 국가를 차지하시고 왕위에 오르신 초기에, 맨 먼저 신 등에게 명하여 고려 왕조 공안(貢案)160) 에서 세입(歲入)의 다과(多寡)와 세출(歲出)의 경비(經費)를 상고하여 손익(損益)을 짐작하여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제거하고 일정한 법을 세우게 하셨으니, 실로 백성의 복인 것입니다. 신 등이 가만히 듣자옵건대, 나라를 보전하려면 반드시 먼저 백성들을 사랑해야 되고, 백성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먼저 용도를 절약해야 된다고 하니,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제거하는 일은 용도를 절약하는 큰 것이며, 부세(賦稅)의 징수를 경감하고 폐단이 있는 법을 고치는 일은 백성들을 사랑하는 큰 것입니다. 옛날의 그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토지의 생산을 헤아려 그 공부(貢賦)를 정하고, 재물의 수입을 헤아려 그 용도를 절약하였으니, 이것이 경상(經常)의 법입니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이것에 삼가야만 되는데 하물며 창업의 초기이겠습니까?
고려의 태조(太祖)는 태봉(泰封)의 사치 포학한 뒤에 일어나서, 공검(恭儉)하고 절용(節用)하는 것으로 법을 후세에 전했는데, 겨우 두서너 대가 되어 광종(光宗)이 이를 계승하자, 사치를 극도로 하여 궁실과 의복·음식이 제도에 지나쳐서 그 1년에 소비한 것이 태조의 10년간의 용도가 되었으니, 이른바 양박(涼薄)한 것에 법을 만들어도 그 폐단은 오히려 탐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기에 와서는 더욱 그 욕심을 극도로 내어 여러 번 그 제도를 변경하여 세입을 증가시켰지만, 그러나 혹은 토목의 역사에 소모하기도 하고, 혹은 불신(佛神)의 숭봉(崇奉)에 다 없어져서, 부고(府庫)에 남은 물건이 없었고 국가의 용도가 넉넉하지 못하였으므로, 일정한 공부(貢賦) 외에 또 부당한 징수를 가하여 마침내 백성이 곤궁하고 재물이 흩어지게 되어서, 나라가 망하는 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화(敎化)를 혁신하는 시기를 당하여 진실로 마땅히 고쳐서 바로잡아야 될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예전 전적(田籍)을 상고하여 토지의 물산(物産)을 분변하여, 공부의 등급을 마련해서 전의 액수를 적당히 감하여 일정한 법으로 정하고, 그 철따라 나는 물건[時物]으로써 일정한 공부가 될 수 없는 것은 일정한 공부의 외에 열록(列錄)하고, 이를 명칭하여 별공(別貢)이라 했으니, 귤(橘)과 유자(柚子)의 유와 같은 것이 이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위에서 취(取)하는 것을 ‘부(賦)’라 하고 아래에서 바치는 것을 ‘공(貢)’이라 하여, 이를 취하되 그 제도에 지나치지 아니하고, 이를 바치되 그 법도를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 성인(聖人)이 공부(貢賦)를 만든 뜻입니다. 대저 아첨하는 신하는 과중하게 징수하여 군주의 욕심을 조장(助長)하는데, 군주가 깨닫지 못하고서 나라에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종말에는 해가 되는 줄은 알지 못하니, 다만 군주가 이를 일찍이 분변해야만 될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제도로써 절용(節用)하여 재물을 손상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해롭게 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대개 용도를 절약하게 한다면 적게 취하여도 남음이 있을 것이고, 용도를 사치하게 한다면 과중하게 징수하여도 넉넉지 못할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절약하고 검소하여 시종토록 변하지 않으시고, 용도를 절약하고 백성들을 사랑하여 만세의 가법(家法)을 삼게 하소서. 지금 정한 바의 공부의 액수를 갖춰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서 장계(狀啓)와 함께 올리오니, 비옵건대, 중앙과 지방에 반포하여 영구히 성법(成法)으로 삼게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3면
- 【분류】재정-공물(貢物) / 정론(政論)
○貢賦詳定都監上書曰:
恭惟殿下應天順人, 奄有國家。 踐祚之初, 首命臣等考前朝貢案, 歲入多寡、歲支經費, 斟酌損益, 以祛積弊, 以立常法, 實生民之福也。 臣等竊聞, 保國必先愛民, 愛民必先節用。 崇儉素去奢侈, 節用之大者也; 輕賦斂更弊法, 愛民之大者也。 古之善治其國者, 量地之産而定其貢, 量物之入而節其用, 此經常之法也。 凡爲國者必先謹乎此, 況創業之初乎? 前朝太祖起泰封奢暴之後, 以恭儉節用, 垂法於前。 纔數世而光王繼之, 窮奢極侈, 宮室服食, 踰於制度, 其一歲糜費, 足爲太祖十年之用。 所謂作法於涼, 其弊猶貪者也。 及其衰季, 尤極其欲, 屢更其制, 以增歲入。 然而或耗於土木之役, 或竭於佛神之奉, 府庫無餘, 國用不給, 常貢之外, 又加橫斂, 卒至民窮財散, 以至於亡。 今當更化之日, 誠宜改正。 臣等謹稽舊籍, 辨土地之物産, 立貢賦之等第, 量減前額, 定爲常法。 其時物之不可爲常貢者, 則列於常貢之外, 名之曰別貢, 如橘柚之類是已。 雖然上之所取, 謂之賦, 下之所供, 謂之貢。 取之不過其制, 供之不過其度, 聖人作貢之意也。 大抵佞臣厚斂以佐人主之欲, 人主不悟, 以爲有利於國, 不知其終爲害也。 唯幸人主辨之於早耳。 《易》曰: "節以制度, 不傷財不害民。" 蓋節用則薄取而有餘, 侈用則厚斂而不足。 伏惟殿下儉約朴素, 終始不渝, 節用愛民, 以爲萬世家法。 今將所定貢額, 具錄成冊, 隨狀投進, 乞許頒布中外, 永爲成法。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33면
- 【분류】재정-공물(貢物)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