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 신료가 태조의 등극을 알리기 위해 명의 예부에 사신을 보내자고 청하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및 대소 신료(大小臣僚)와 한량(閑良)·기로(耆老) 등이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조반(趙胖)으로 하여금 중국 서울에 가서 예부(禮部)에 아뢰게 하기를 청하였다.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우리 나라가 공민왕이 후사(後嗣)없이 세상을 떠나자 후사(後嗣)가 없으매, 역신(逆臣) 신돈(辛旽)의 아들 우(禑)가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 등에 의하여 왕으로 세워졌으나, 우(禑)는 곧 혼폭(昏暴)하고 광자(狂恣)하여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 요동(遼東)으로 향하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우군 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李成桂)가 상국(上國)의 국경을 범할 수 없다고 하면서 대의(大義)에 의거하여 군사를 돌이키니, 우(禑)는 이에 돕는 사람이 적은 것을 스스로 알고서, 두려워하여 왕위를 사양하여 아들 창(昌)에게 물려주니, 나라 사람들이 공민왕의 비(妃) 안씨(安氏)의 명령을 받들어 왕씨(王氏)의 종친(宗親)인 정창 부원군(定昌府院君) 요(瑤)로써 임시로 국사(國事)를 서리(署理)하게 한 지가 지금 4년이나 되었습니다. 요(瑤)가 또한 혼미(昏迷)하여 법에 어그러져서 충성하고 정직한 사람을 소원(疏遠)하게 하고, 참소하고 간사한 무리를 친근(親近)하게 하여, 시비(是非)를 변란(變亂)시키고 훈구(勳舊)를 모함(謀陷)하며, 불신(佛神)에게 아첨하여 혹하고, 토목(土木) 공사를 함부로 일으켜 비용을 낭비함이 한도가 없으니, 백성들이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 석(奭)이 어리석고 무지(無知)하여 주색(酒色)이 방종하며 여러 소인을 모아 충성하고 정직한 사람을 모해(謀害)하였으며, 또 그 신하 정몽주(鄭夢周) 등이 간사한 계책을 몰래 이루어 난(亂)의 발단을 일으키고자 하여, 이에 훈신(勳臣) 이성계(李成桂)·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을 임시로 국사(國事)를 서리(署理)하는 요(瑤)에게 참소하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논핵(論劾)하여 해칠 것을 꾀했으나, 나라 사람들이 분개하고 원망하여 몽주(夢周)를 함께 목 베었습니다. 임시로 국사(國事)를 서리하는 요(瑤)가 그래도 허물을 고치지 아니하고 또 살육(殺戮)할 것을 꾀하므로, 온 나라 신민(臣民)들이 실로 사직(社稷)과 백성이 모두 그 해를 입을까 염려하고 두려워하여 거조(擧措)를 잃고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생각하기를 이 같은 짓으로는 이 백성들을 다스리고 사직(社稷)을 받들기가 어렵다고 하여, 홍무(洪武) 25년(1392) 7월 12일에 공민왕의 비(妃) 안씨(安氏)의 명령으로써 요(瑤)를 사제(私第)에 물러가 있게 하였습니다. 간절히 생각하옵건대, 군정(軍政)과 국정(國政)의 사무는 하루라도 통솔(統率)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종친(宗親) 중에서 가려 뽑아 보니 세상의 인망(人望)에 당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문하 시중(門下侍中) 이성계(李成桂)는 은택(恩澤)이 백성들에게 입혔으며, 공로는 사직(社稷)에 있어서, 조정과 민간의 마음이 일찍부터 모두 진심으로 붙좇았으므로, 이에 온 나라의 대소 신료(大小臣僚)와 한량(閑良)·기로(耆老)·군민(軍民)들이 모두 왕으로 추대하기를 원하여, 지밀직부사(知密直司事) 조반(趙胖)으로 하여금 앞서 조정(朝廷)에 가서 주달(奏達)하게 하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번거롭게 아뢰옴을 밝게 살펴서 여러 사람의 뜻을 굽어 따라서, 한 나라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0면
- 【분류】외교-명(明) / 역사-고사(故事)
○都評議使司及大小臣僚、閑良、耆老等請令知密直司事趙胖赴京申禮部曰:
竊謂小邦, 至恭愍王薨無嗣, 逆臣辛旽子禑爲權臣李仁任等所立。 禑乃昏暴狂恣, 多殺無辜, 至興師旅, 欲向遼東。 時右軍都統使李 【太祖舊諱。】 以爲不可犯上國之境, 擧義回軍, 禑乃自知寡助, 惶懼辭位, 以與子昌。 國人稟奉恭愍王妃 安氏之命, 以王氏宗親定昌府院君 瑤, 權署國事, 及今四年。 瑤又昏迷不法, 疏斥忠正, 昵比讒邪, 變亂是非, 謀陷勳舊, 諂惑佛神, 妄興土木, 糜費無度, 民不堪苦; 子奭癡騃無知, 縱于酒色, 聚會群小, 謀害忠直。 又其臣鄭夢周等潛成奸計, 欲生亂階, 乃將勳臣李 【太祖舊諱。】 、趙浚、鄭道傳、南誾等, 譖於權署國事, 令有司論劾, 以謀致害, 國人憤怨, 共誅夢周。 權署國事, 尙不悛改, 又謀殺戮。 擧國臣民實慮社稷生靈俱被其害, 惶懼失措, 無可奈何, 咸謂以若所爲, 難以主斯民奉社稷, 洪武二十五年七月十二日, 以恭愍王妃 安氏之命, 退居私第。 切念軍國之務, 不可一日無統, 擇於宗親, 無有可當輿望者, 惟門下侍中李 【太祖舊諱。】 澤被生靈, 功在社稷, 中外之心, 夙皆歸附。 於是一國大小臣僚閑良耆老軍民等咸願推戴, 令知密直司事趙胖, 前赴朝廷奏達, 伏乞照驗, 煩爲聞奏。 俯從輿意, 以安一國之民。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0면
- 【분류】외교-명(明)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