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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67권, 중종 25년 1월 24일 乙卯 1번째기사 1530년 명 가정(嘉靖) 9년

잔폐한 고을의 수령 차견을 앞으로는 전조에서 하게 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에 경연에서 대신들이 ‘각도(各道)의 잔폐(殘弊)한 고을에는 모름지기 시종과 대간을 차견해야만 소복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다. 성종(成宗조(朝) 때 김전(金詮)기찬(奇禶)은 모두 시종으로서 차견되어 나갔다.’ 했다. 성종조의 일은 상세히 모르겠다. 《국조보감(國朝寶鑑)》으로 살펴보면 조종조 때에는 집의(執義)와 사간(司諫)으로서 수령(守令)에 제수되어 나가는 자에 대해 시의(時議)는 그가 폄척받은 것과 같게 여겼었다. 대간과 시종에서 곧바로 차견되어 나아가면 과연 폄척받은 것 같은 점이 있다. 지난번 허흡(許洽)송겸(宋謙)을 잔폐한 고을 수령에 차견한 것은 평천(平遷)이나 강직(降職)의 예(例)가 아니라, 군수(郡守)나 목사(牧使)로 승진시킨 것이다. 정해년094)송겸은 고원 군수(高原郡守)에, 허흡은 안주 목사(安州牧使)에 제수되었었다. 이 두 사람은 대간으로 있을 적에 안빈(安嬪)의 집이 법제에 어긋난다는 것으로 철훼(撤毁) 시켰었다. 그리고 나서 외직(外職)에 보임하는 명(命)이 있었으므로 중외(中外)의 사람이 모두 의아해 하였다.】 자급(資級)095) 이 부족하면 특별히 자급을 높여 차견했는데도 그 뒤에 시종과 대간은 내가 그들을 미워해서 이렇게 한 것이라고 했었다.

지금 홍문관의 상소를 보니 명확히 지적하지는 않았으나 역시 이런 뜻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대간과 시종에서 바로 차견되어 나간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벼슬에서 체직(遞職)되었기 때문에 잔폐한 고을을 소복시키고자 차견한 것이었다. 위에서 특명(特命)을 내리는 것은 과연 곤란한 일이다. 전에는 이조(吏曹)로 하여금 잔폐한 주군(州郡)을 서계(書啓)하게 하여 위에서 특차(特差)했었는데도 여론이 이러하였다. 이 뒤로는 전례에 따라 전조(銓曹)에서 택차(擇差)하되 서계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말하라."


  • 【태백산사고본】 34책 67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18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국왕(國王)

○乙卯/傳于政院曰: "昔於經筵, 大臣啓曰: ‘各道殘弊郡邑, 須以侍從、臺諫之人差遣, 庶有蘇復之理。’ 不然, 是棄之也。 成宗朝如金詮奇禶, 皆自侍從而出云。 成宗朝事, 未詳知也, 以《國朝寶鑑》觀之, 祖宗朝有以執義、司諫, 出爲守令者, 時議以爲有似見貶。 直自臺諫、侍從而出, 果似見貶也。 頃者以許洽宋謙, 命差殘邑守令, 非平遷、降職 【丁亥年, 宋謙爲高原郡守, 許洽爲安州牧使。 二人爲臺諫時, 安嬪家以過制撤毁, 而有補外之命, 中外疑之。】 之例, 乃陞諸郡守、牧使, 資級不足, 則特給而遣之。 而其後侍從、臺諫, 以予爲惡之而如此也。 今見弘文館上疏, 雖不的指, 亦有如此之意。 二人非自臺諫、侍從而出也, 已遞爲他官, 故欲使蘇復殘邑而遣之也。 自上特命, 果爲難也。 前者, 令吏曹, 書啓殘弊州郡, 而自上特差, 則物議如是。 今後依前例, 自銓曹擇差, 不必書啓之意, 言之可也。"


  • 【태백산사고본】 34책 67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18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