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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31권, 연산 4년 11월 11일 癸卯 1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함경도 관찰사 이승건의 논의에 따라 벽에 시를 써붙인 김종직의 문도 이종준을 국문하게 하다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이승건(李承健)이 아뢰기를,

"신이 단천군(端川郡) 마곡역(麻谷驛)에 이르러 보오니 벽상에 써서 붙인 시(詩)가 있사온데 그 시에,

‘고충을 자부한들 대중이 허여 않고,

홀로 서서 감언하긴 사람치고 어려워라.

나라 떠난 이 한 몸이 잎처럼 가볍지만

고명은 천만고에 산보다 무거우리.

함께 놀던 영준들아 낯이 어찌 두터우냐.

죽지 않은 간유들도 뼈가 이미 써늘하리.

하늘이 우리님 위해 사직을 붙잡을진대

어쩌다 그대를 살려 보내지 않으리.’

하였습니다. 신이 역리(驛吏)를 불러 물은즉 바로 이종준(李宗準)이 쓴 것이라 하옵니다. 종준김종직의 문도(門徒)로서 이미 중죄를 입었는데도 오히려 징계를 아니하고, 옛시에 가탁하여 자기 뜻을 나타냈으니, 묻지 아니할 수 없사옵기로 신은 이미 가두고 국문하게 하였사온데, 만약 승복하지 아니하면 형장 심문을 하여 내심을 알아내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니, 명하여 정승에게 수의하게 하였다. 윤필상·한치형·신승선·성준·정문형이 의논드리기를,

"이종준이 이 시를 벽상에다 쓴 것은 반드시 내용이 있을 것이온즉, 의금부로 하여금 잡아오게 하여 추국(推鞫)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니, ‘가하다.’고 전교하였다. 종준이 죄없는 총(摠)을 무함하였으니, 그 사모(邪謨)와 궤계(詭計)가 죽어 마땅하다. 총(摠)은 종실(宗室)이었다. 유아(儒雅)를 좋아하고 음율을 이해하여 사귄 사람들이 지명 지사(知名之士)가 많았고 조금도 귀공자의 귀품이 없었다. 별장을 양화도(楊花渡) 입구에 세우고 날마다 술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낙으로 삼고, 뜻을 강호(江湖)에 두니, 당시 사람들이 풍류 공자라 일컬었다.

사옥(史獄)이 있은 뒤, 왕은 문인(文人) 유사(儒士)들이 문자를 의탁하여 시세(時世)를 기롱하는 것을 깊이 미워하자 승건이 왕의 의사를 탐지하고 이로써 은총을 살려고 하였으니, 그 간교가 지극하였다. 승건은 성질이 본시 험사(憸邪)하여 권귀(權貴)에게 붙어 아부하여 신수근을 섬기었다. 일찍이 진신(搢紳)들이 모인 좌중에서 신수근은 참으로 공보(公輔)의 자격이라고 극구 칭찬하니, 권경우(權景祐)가 좌중에 있다가 정색하고 말하기를, ‘공께서 사람의 현능(賢能)을 칭찬하여 조정에 전달하려고 할진대, 마땅히 빈한하고 궁곤한 선비로 조정에서 알지 못하는 자를 천거할 일이지, 아무개 같은 이야 비록 칭찬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누가 모르겠소’ 하니, 승건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31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333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인물(人物)

    ○癸卯/咸鏡道觀察使李承健啓曰: "臣到端川磨谷驛, 壁上有書: ‘孤忠自許衆不與, 獨立敢言人所難。 去國一身輕似葉, 高名千古重於山。 竝遊英俊顔何厚, 未死奸諛骨已寒。 天爲吾皇扶社稷, 肯敎吾子不生還。’ 臣招驛吏問之, 則乃李宗準所書。 宗準金宗直門徒, 已蒙重罪, 猶不懲戒, 假托古詩, 以寓己意, 不可不問。 臣已令囚鞫, 若不承服, 刑訊得情何如?" 命議于政丞。 尹弼商韓致亨愼承善成俊鄭文炯議: "李宗準書此詩於壁上, 必有其情。 令義禁府拿來推鞫何如?" 傳曰: "可。" 宗準誣陷非罪, 邪謀詭計, 其死宜矣。 宗室也。 喜儒雅, 解音律, 所與交, 多知名之士, 略無貴介氣習。 卜別墅於楊花渡口, 日置酒爲樂, 放意於江湖, 時稱風流公子。 史獄後, 王深嫉文人、儒士托文字譏刺時世者。 承健揣知王意, 欲以此取悅沽寵, 其奸巧極矣。 承健性本憸邪, 附權貴, 諂事愼守勤。 嘗於搢紳會坐中, 極口稱守勤眞公輔之器。 權景祐在坐正色曰: "公欲稱人之賢能以達于朝, 當擧寒窮之士朝廷所不知者。 如某雖非稱譽, 人誰不知?" 承健有慙色。


    • 【태백산사고본】 9책 31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3책 333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인물(人物)